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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는 계속 지배할 수 있을까?_진화의 종말 (교수신문_2011 9 19)
작성자 이규호 작성일 11-11-30 17:54 조회 6,468
호모 사피엔스는 계속 지배할 수 있을까?
 
최익현 기자 [
교수신문 2011년 09월 19일]
 
진화의 종말』(폴 에얼릭·엔 에어릭 지음, 하윤숙 옮김, 도서출판 부키)

책 제목이 굉장히 자극적이다. 원제는 The Dominant Animal (2008, Island Press)지만, 한국어판에서는 다른 이름을 달았다. 출판사측의 설명을 들어보자. 인류 발생의 비밀을 밝힌 진화론의 위대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처음부터 지구의 모든 동식물을 다스리는(지배하는) 존재로 태어났다고 인식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진화는 '쫑' 났다. 한편으로 인류는 진화론의 모든 질서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선택압'으로서 수많은 생물종을 멸종시켰으며 지배종인 자신 또한 스스로 변화시킨 환경의 영향을 되받는 미래의 '멸종 위기종'으로 몰리고 있다.
 
책의 저자들은 이미 눈치 챘겠지만, 과학자 부부다. 폴은 스탠퍼드대 교수로,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가 노벨상에서 제외된 분야에 수여하는 크로포르드 상을 받은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다. 집단생물학 및 생물 다양성 보존이 그의 주 전공이다. 국내에서 소개된 『인간의 본성(들)』의 저자이다. 그의 아내 엔은 스탠퍼드대 생명과학부 선임연구원으로 나비, 산호초 물고기에서 핵무기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폭넓은 연구활동을 벌여온 인물이다. 시에라 클럽 등 여러 환경단체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함께 쓴 『진화의 종말』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이 어떻게 지구를 지배하는 존재가 됐으며, 그 과정에서 어떻게 환경과 상호작용을 벌여왔으며, 그 결과 지구는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됐느냐를 진화론에서 국제정치에 이르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으로 고찰한 책이다.
 
저자인 폴 에얼릭 교수는 인류 문명과 역사를 '문화적 진화'로 해석한다. '문화의 진화'는 이미 여러 진화론자들이 이야기한 바 있지만, 이 책에서 문화적 진화는 독특한 역할을 한다. 바로 지구 생태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속에 존재하는 인류의 모습을 진화의 연속선상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은 기후변화 등 익숙한 환경문제에 접근하는 데도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 '운동'으로서의 환경에 과학적 분석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진화학자들이 '유전학적' 진화에만 초점을 맞춰 환경을 배경으로만 인식하는 한계도 넘어서게 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문화적 진화란 사람들이 지니고 있지만 유전자에는 들어 있지 않은 정보의 변화를 말하며, 현재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는 데 유전적 진화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는 문화적 진화와 유전적 진화의 상호 이해 속에서 이 행성의 오랜 진화 스토리를 성찰하고자 한다.
 
이 책이 진화론은 물론, 생태학, 기후학, 인구학 등에 걸친 광범위한 분야를 입문서 수준에서 깔끔하게 정리하고 특히 지구 생태계 차원에서 이들 학문들이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큰 그림을 보여준다는 점은 큰 미덕이다. 곳곳에서 흥미로운 사례를 풀어놓았다.

예컨대 진화와 생태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할 때 저자는 병자초 모기와 알락딱새가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지를 보여준다. 병자초 모기는 북아메리카 동부 지역에 서식하는데, 식충식물인 푸푸레아의 주머니 속 물에 산다. 겨울잠을 자는 애벌레는 낮의 길이를 기준으로 수면 상태에 들어가는데(유전자가 통제한다), 언제부터인가 낮의 길이가 예전보다 훨씬 짧아져서야 겨울잠을 시작했다. 온난화로 인해 예전과 같은 시기에 겨울잠을 자면 몸에 비축한 지방을 다 소진해 봄이 되더라도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적응'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유럽에 사는 알락딱새의 몇몇 개체군은 90퍼센트나 감소했다. 온난화로 기후가 따뜻해지자 벌레 개체가 가장 많은 시점이 당겨졌고, 알락딱새 새끼들이 먹이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것이다. 인간이 환경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동안 이처럼 지구 생태계는 진화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묘미는 전반부보다 후반부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진화의 정점에 선 이 존재가 지배하는 지구는 과연 지속가능할 것인가, 라는 물음이 진화생물학을 바탕으로 인구, 기후, 생태, 정치 문제 등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구가 변수다. 높은 인구 밀도와 빠른 교통 체계는 세계적인 질병(HIV/AIDS)이나 신종 플루의 발생을 촉발한다. 이렇듯 증가한 인구가 인류에게 치명적인 역습을 가하는 한편에서는 더 이상 인간이 생물권을 '관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상이 그려진다. 저자들은 1980~1990년대 미국 애리조나에서 펼쳐진 '바이오스피어 2' 실험을 통해 입증된 '생물권 관리 불가능'이란 사실을 거듭 활용한다.
 
또한 인구 증가와 더불어 이 거대한 '식충이'들이 먹어치우는 소비 문제도 예사롭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토양 파괴, 지하수의 과잉개발은 농업토양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육류 소비 증가도 한몫 거든다. 21세기 중반 전 세계 식량은 약 40퍼센트가 넘는 사람만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농업 전문가들의 예상을 지나칠 수 없다. 열역학 제2법칙을 활용, 육류 소비의 위험성을 지적한 대목도 흥미롭다.
 
훨씬 근원적인 문제로 기후와 에너지 문제를 다뤘는데, 저자들이 제안하는 것은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 '총량 제한 배출권 거래 제도'의 포괄적 활용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경제와 정치의 문제로 논의를 옮겨가게 만든다. 환경문제는 더 이상 세계화와 지배 체제(정치) 등과 떼어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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