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생각법 (DISCOVERING: Inventing Solving Problems at the Frontiers of Scientific Knowledge)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권오현 옮김; 을유문화사)
최익현 [교수신문_화제의 책]
발견의 위한 전략 메뉴얼 일부
쿤의 원리: 혁명은 변칙현상을 인식하는 일에 뒤따른다.
페리미의 경고: 답을 추측할 수 있을 때까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마라.
다윈의 의견: 사변없이 훌륭하고 독특한 관찰은 나오지 않는다.
오컴의 면도날: 단순성을 찾아라.
베이트의 원리: 간단한 해답은 복잡한 문제를 자세히 이해했을 때에만 떠오른다.
흔히 하는 말에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프레임을 바꿔보라는 뜻의 이 말은 생각의 각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환기할 때 자주 호명된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무성할지라도 생각 혹은 아이디어는 시대의 조류와 무관하게 여전히 중요하다. 대개 위대한 발명과 창의성은 그런 생각의 전환에서 왔으니 말이다.
미국 미시간주립대 생리학과 교수인 로버트 스콧 루트번스타인은 아내인 미셸 루트번스타인과 함께 『생각의 탄생: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Spark of Genius)』(2007)를 썼다. 부제처럼 좀 더 대중에게 다가선 말랑말랑한 책인데, 그는 이보다 앞서 1989년에 조금 더 전문적인 『과학자의 생각법』을 내놓기도 했다. 1975년에 여러 저명한 과학자가 어떻게 발견을 이뤘는지 논하는, 서로 관련 없는 일련의 에세이를 쓰면서 시작된 책이다.
『과학자의 생각법』은 과학자가 생각의 벽을 넘어서는 방식이랄까 그런 과정을 잘 드러냈다는 데서 재미를 찾을 수 있지만, ‘과학자 집단’에 한정되지 않고 인문·사회학자들에게까지 어떤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데 또 다른 미덕을 매길 수 있다. 그의 집필 동기를 들어보자. “나는 과학자들이 남긴 노트, 서신, 자서전, 회고록을 이용해 그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돌파구를 찾는 과정을 재창조하려고 했다. 또 최고의 과학자들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습득하기를 바랐다!” 거의 30년 전에 집필한 책이지만 그는 ‘2017년 한국판 서문’에서 “바꿀 내용은 거의 없다. 핵심 주장 대부분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보탰다. “과학자로서 30년 동안 연구해보니 이전보다 과학사회학을 더 강조하고 싶다. 즉, 동료 집단이 가하는 압력과 집단행동이 과학적 사고를 형성하는 데 (특히 통제하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과학자 역시 다른 전문가 집단과 마찬가지로 ‘집단적 사고’에 취약하며 인기와 유행에 휩쓸린다. 특히 돈이 되는 분야라면 말이다.”
최고의 과학자들, 예술 등 창조적 분야에도 적극 참여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몇 가지 개념을 명확히 하면서, 최고의 과학자들이 보여주는 어떤 경향성을 끄집어냈다. (고독한 연구자가 그저 무엇이 있는지 보려고 과학의 황무지를 향해 떠나는) 개척 또는 탐사 과학, (개척한 연구를 입증하고 그 잠재력을 탐구하는) 입증 연구, (새로운 돌파구에 잠재해 있는 활용법을 탐구하는) 개발 연구, (개발한 성과물을 공리에 맞게 최적화하고 시장에 내놓는) 이행 연구, (어떤 분야에서 더 이상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지 않는) 노쇠 연구를 구분하면서, 이들 각각이 연구비를 지원하는 형식과 금액, 동료 평가, 훈련, 제도화하는 방식에서 달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최고의 과학자들은 미술, 음악, 무용, 소설, 희곡, 시, 창작, 그 밖에도 여러 창조적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생각법, 생각도구를 겨냥했지만 저자의 접근은 외연을 더 확장하고 있다. ‘과학지리학’이라는 분야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놓는가 하면, 독단적 원리에 반대하는 수많은 과학적 사상을 전개하기도 했다. 동료와 함께 노벨상 수상자와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어디서 왔는지 조사했던 저자는 과학에서 일어나는 혁명, 새로운 과학의 탄생은 지리적 변두리나 전에 없던 기관에서 유래한다고 지적하면서 ‘과학지리학’을 새롭게 제안한다. 독단적 원리 대신, 저자는 자신의 책 『과학자의 생각법』에 담긴 생각, 예컨대 거꾸로 뒤집어 보기, 여러 가설을 정교화하고 비교하기, 터무니없는 이유로 추정해 보기 등을 활용해 30여년에 걸쳐 당뇨병, 류머티스성 관절염, 다발성 경화증 같은 자가 면역 질환의 원인을 밝히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해왔다.
다시 질문. ‘과학적 발견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고, 또 이를 과학자들이 잘 연구하지 않은 건 무엇 때문일까? 저자는 세 가지로 요약했다. (1) 과학자 자신이 ‘자신들이 어떻게 연구하는지 의식하는 일’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 (2) 과학적 발견의 과정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것. (3) 과학이 따르는 철학, 방법론적 관습. 이들이 과학적 발견의 과정을 이해하는 작업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다.
그러니까 이런 장애물을 걷어내면 ‘과학적 발견의 과정’이 드러난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실제로 일어나는, 수많은 사람을 연결한 과학적 사고 과정’을 조명하고, 그럼에도 이런 주관적이고 오류 가능한 인간 정신이 어떻게 과학같이 강력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지 조사하고자 한다.” 이렇게 해서 저자는 과학을 과학자들이 발취하는 상상력으로 이해하고자, 다시 말해 과학자가 ‘무엇을’ 하는가 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 알고자 과학자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간다. 또한 과학적 발전을 설명하는 논쟁적인 진화모형을 제안하며, 과학적 발전에는 논리와 함께 유형인지, 모형화, 시각 및 운동 감각적 사고가 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드러내려고 한다.
가상의 학자 여섯이 ‘과학적 창의성’ 놓고 토론
그렇다고 책 전체가 딱딱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과학적 사고에 자리한 창의적 측면과 개성적 특질을 탐구하는 목적에 맞춰 픽션의 형식을 취했다. 즉, 생물학자, 역사학자, 화학자, 과학사학자 등 가상 인물 여섯 명은 과학적 창의성의 핵심에 놓인 다양한 쟁점을 논하는 토론회에 참석해 ‘과학적 발견’이라는 과정의 비밀을 6일 동안 파헤친다. 이는 고전 『데카메론』 이후 자주 사용되는 서사 방식이기도 하다. ‘발견하기 프로젝트 (Discovering Project)’라는 이름 아래 모인 이들 여섯 명의 탐구자들은 6일 동안 ‘발견 과정에는 어떤 구조가 있는가? 누가 발견에 이르는가? 발견자는 어떤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는가? 발견을 잘하는 방법이 있는가?’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의 대화 속에는 놀라운 발견으로 세상을 바꾼 역사적인 과학자들, 예를 들어 미생물을 발견해 세상을 이해하는 지평을 넓힌 미생물학자이자 화학자인 루이 파스퇴르,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발견해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한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 표백에 염소를 활용하는 방법을 발견해 당대 최고의 염색 기술을 제공한 화학자 클로드 베르톨레, 삼투압 원리를 발견한 제1회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야코부르 반트 호프 등 다양한 과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발견법과 생각법 등이 등장한다. 여섯 명의 가상 인물은 이러한 실제 과학자들이 남긴 실험실 노트와 편지, 논문, 개인사 등을 분석하고 과학자들의 실험을 재구성하면서, 각자 입장에서 뜨거운 논쟁을 벌인다. 그러면서 자신이 품고 있던 선개념 (Preconception)을 다시 생각하고 탐색하며, 익숙한 유형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게 된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 책 전체를 통해 가장 강조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확신한다. “가장 우수하고도 실용적인 발품은 거의 언제나 이미 기술적 목표나 응용법을 염두에 두어서가 아니라 그저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은 기초 연구의 순수성에서 생겨났다. 현대 과학의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은 이해가 발휘하는 힘을 알지 못한다. 기초 원리는 필요가 만드는 연구가 아니라 호기심이 이끄는 연구로 발견되며, 이것이 훨씬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