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9. 7.)
출처 : 교수신문_화제의 새 책
장대익 교수가 펴낸 『종의 기원』은 1859년에 출간된 초판(1판)을 번역한 것이다. 『종의 기원』은 1859년 이후 1872년까지 모두 여섯 번의 개정 작업이 이뤄지는데, 그때마다 다윈은 오탈자를 교정하기도 하고, 그 이전 판에 대해서 제기된 비판들을 모아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론을 변경하기도 하고, 용어를 새로 도입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연 선택을 통한 진화’라는 개념을 논증하는 3부작이라고 할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1871년),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년)을 완간하는 시점에 낸 6판을 20세기 중반까지 진화 생물학자들은 다윈 사상의 완성본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진화 생물학이 성숙한 20세기 중반 이후 다위 사상과 그가 남긴 문헌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다윈이 『종의 기원』 개정판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책이 만든 논란을 의식해 표현을 순화하거나 우생학적, 인종주의적 편견에 이용될 수 있는 빌미를 만들거나 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지성계에 파란을 일으켰던 바로 그 책, 다윈의 원래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는 초판을 살펴보자는 움직임이 형성됐다. 한국 진화학계의 역량을 모아 제대로 된 다윈 선집을 만들어 보자는 「드디어 다윈」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종의 기원』이 초판을 번역한 것은 이러한 세계 학계의 움직임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1960년 이후 여러 판본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었고, 초판 번역본도 일부 있었지만, 그중 대다수는 6판이었다.
장대익 교수는 『종의 기원』 초판을 번역 출간하면서 진화 생물학의 최근까지의 역사적 성과와 다윈 문헌에 대한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다윈 사상의 원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진화(evolution)’라는 단어부터 재검토했다. 사실 ‘진화’라는 용어는 『종의 기원』초판에서 사용된 적이 없다. 다윈주의를 사회 현상에 적용해 인종주의와 우생학의 요람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는 사회 다윈주의 창시자 허버트 스펜서의 영향을 받은 게 명백해 보이는 ‘진보’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배어 있는 ‘진화’라는 단어를 다윈이 처음 쓴 것은 1871년 출간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부터다. 그리고 『종의 기원』에 사용된 것은 1872년 출간된 6판부터다. 그 전까지 다윈은 자신의 ‘진화’ 개념이 ‘진보’ 개념과 혼용되는 것을 극도로 회피했고, 실제로 초판에서는 진화라는 단어 대신 “변화를 동반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 만을 사용한다.
그리고 나중에 ‘진화’를 사용하게 되었을 때에도 이 단어가 ‘진보’가 아니라 ‘전개(unfolding)’로 읽히기 원했다. 다윈 사상의 원점을 찾기 위한 장대익 교수의 이러한 노력은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처음에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로 숨결이 불어 넣어진 생명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이 행성이 회전하는 동안 여러 가지 힘을 통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전개되다’라고 번역되어 있는 원래 단어는 “evolution”의 동사형인 “evolve”다. 『종의 기원』 초판에서 단 한 번, 그것도 마지막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존에 출간된 수많은 판본들이 이 단어를 ‘진화’로 번역했다. 심지어 초판을 번역한 판본도 그렇게 번역했다. 하지만 장대익 교수는 이것을 다윈의 원래 뜻을 따라 ‘전개’로 바로잡았다.
이 외에도 ‘생존 경쟁’으로 번역되던 “struggle for existence”를 ‘생존 투쟁’으로, 번역자마다 온갖 다른 방식으로 번역되던 “descent with modification”를 ‘변화를 동반한 계승’으로 다듬어 내는 등 진화학계의 정합적인 용어 사용을 위한 기초를 닦았다. 뿐만 아니라 다윈의 원문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우리말 독자들이 다윈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문장들을 다듬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진화학자가 제대로 번역한 『종의 기원』의 우리말 정본(定本)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