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사자성어로 본 한국사회
- 교수신문 (2011년 12월 17일) -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처음 선정한 것은 2001년이었다. 첫해 선정된 사자성어는五里霧中 (오리무중)이었다. 날만 새면 바뀌는 교육정책,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암울한 국제 정세, 계약제ㆍ연봉제가 불러온 신분 불안을 교수들은 ‘오리무중’에 빗댔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의 사자성어로는 離合集散 (이합집산)이 뽑혔다. 참여정부가 출범했지만 정치, 외교, 경제 정책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대구지하철 참사 등 사회 각 분야가 갈피를 잡지 못했던 2003년은 右往左往 (우왕좌왕)의 해로 기억된다.
2004년은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을 두고 정치권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해다. 같은 파끼리는 한 패가 되고 다른 패는 배척한다는 뜻의 黨同伐異 (당동벌이)는 그래서 나왔다.
2005년의 사자성어로는 上火下澤 (상화하택)이 선정됐다. 불이 위에 놓이고 못이 아래에 놓인 모습이다.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을 상징한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 사건,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놓고 여야와 보수-진보가 대립했다.
2006년 사자성어로 선정된 密雲不雨 (밀운불우)는 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돼 내리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여건은 조성됐지만 일이 성사되지 않아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을 빗댄 말이다. 당시 밀운불우를 추천했던 한 교수는 “오늘은 또 무슨 일이 터졌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신문이나 텔레비전 보기조차 두려웠던 일 년”이라고 표현했다.
대선의 해였던 2007년에는 집단적 도덕 불감증을 꼬집은 自欺欺人 (자기기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사람을 풍자한다. 김병준 교육부총리에 이어 신정아 동국대 교수, 대학 총장에 이르기까지 사회 저명인사의 학력 위조와 논문 표절이 연일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을 차지했던 해였다.
참여정부 5년 동안은 2007년을 제외하곤 주로 혼란과 갈등을 빗댄 표현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반면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첫 해부터 소통 부재와 독단적 정책 추진을 우려하는 사자성어가 주를 이뤄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2008년에는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는 뜻의 護疾忌醫 (호질기의)가, 2009년에는 일을 바르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것을 비유한 旁岐曲逕 (방기곡경)이 각각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2008년에는 미국산 쇠고기 파문, 촛불시위, 미국발 금융위기를 처리하는 정부의 대응 방식을 놓고 국민과 전문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2009년에도 세종시법 수정 시도, 대운하 사업의 4대강 정비사업 전환 의혹, 미디어법의 편법 처리로 우리 사회가 갈등했다.
2010년을 정리하는 사자성어 역시 그 연장성에 있다. 藏頭露尾 (장두노미)는 머리는 겨우 숨겼지만 꼬리가 드러나 보이는 모습을 비유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한미 FTA 협상, 새해 예산안 졸속 처리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의혹을 해명하기는커녕 오히려 진실을 덮고 감추기에 급급했다는 이유에서다. 급기야 2011년에는 ‘소통 부재’를 보다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掩耳盜鐘 (엄이도종)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권형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