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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Re: 공부의 본질 (교수신문_2023 3 7)
작성자 MML 작성일 23-03-09 17:40 조회 759

"미국 대학도 100년 만에 어렵사리 깨달은 공부의 본질"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_교수신문 (http://www.kyosu.net)


‘우리는 왜 공부를 못 할까? 독일 대학은 왜 세계 최고인가?’ 19세기 내내 미국학자들을 괴롭힌 질문이었다. 베를린 대학이 1810년 대학 혁명을 일으키고 나서 100여년 동안 미국 대학은 공부와 대학의 본질을 깨닫지 못했다. 당시 독일 대학들은 ‘박사학위’만 수여했고 미국 대학들은 ‘학사학위’만 수여했다. 독일 대학은 학부와 대학원이 통합된 과정이었고 미국 대학은 학부만 있는 대학이었다. 박사와 학사가 경쟁하면 누가 이기나? 당연히 박사가 이긴다. 


당시 미국 대학의 교육목표는 ‘젠틀맨’의 양성이었다. 대학이 학벌을 주는 ‘지위 권력’으로서만 기능하였기 때문에 창조적 인재를 기를 수 없었다. 독일 대학은 처음부터 박사라는 창조적 인재를 기르는 창조 권력으로 기능했다. 미국 대학의 교육 방식은 암기식이었다. 고전, 라틴어, 그리스어, 성경 등을 달달 외우는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독일 대학은 연구 질문에 대한 끈질긴 탐구를 강조하는 교육 방식을 선택했다. 교육이 곧 어려운 연구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는 탐구의 과정이었다. 곧 독일 대학이 공부의 본질을 가장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공부의 본질은 무엇인가


공부의 본질은 무엇인가? 공부는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질문을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해답을 찾는 것이다. 공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은 공부에서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 인간은 고통받는가?’라는 질문을 싯다르타가 던졌다. 민주주의 사상가들은 ‘왜 왕이 국가를 지배해야 하는가? 시민이 자율적으로 지배하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페미니스트들은 ‘왜 남자가 여자를 지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핵물리학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인터넷을 발명한 공학자들은 ‘중앙집중식 커뮤니케이션을 넘어선 다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mRNA 백신 발명자들은 ‘매우 불안정한 RNA를 기반으로 한 백신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동서고금과 학문분과를 막론하고 공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정답 찾기와 ‘질문을 던지는 법’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교육과정에서 질문을 던지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입식 암기 교육이 주를 이루다 보니 학생들은 정답 찾기에 골몰한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 대학이 출현하기 전까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현상이다. 미국 학생들도 주입식 암기 교육을 받았다.  독일 대학의 혁명은 바로 질문을 던지는 데 있었다. 독일 대학은 박사학위만을 수여했기 때문에 학위를 받고자 하는 학생들은 모두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해야만 했다. 박사학위논문은 연구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맞는 해답을 찾는 과정이다. 주입식 암기 교육이 주를 이룬 미국 대학과 교육과정이 판이하게 달랐다. 대학의 본질적인 기능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한국 대학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질문하지 않거나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mRNA 백신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국 의학자나 공학자는 던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그런 질문을 던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곧 질문하는 자는 능력자이며 질문이 없는 자는 무능력자다. 이 질문은 미국, 영국, 독일의 의학자나 과학자들이 던졌고, 이들이 결국 불가능해 보였던 mRNA 백신을 발명했다.


질문은 다양하다. 위대한 질문이 있고, 사소한 질문이 있다. 위대한 질문일수록 답을 찾는 과정은 대단히 힘들고 까다롭다. 질문하는 자는 ‘내적 투쟁’이라는 단계에 들어선다. 왜냐하면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다.


‘싯다르타’는 6년 동안의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었다. 그는 6년 동안 일종의 박사학위논문을 쓴 것이었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인류 진화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내적 투쟁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화이자는 mRNA 백신을 발명하기 위해서 앨버트 불라 회장을 중심으로 내적 투쟁에 돌입했다. 어려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내적 투쟁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대학은 위대한 질문을 다루는 곳

    

대학은 ‘조직적으로’ 위대한 질문을 다루는 곳이다. 이제까지 누구도 풀지 못한 질문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곳이 대학이다. 노벨 수상자들 대부분이 현대 대학에서 배출된 이유다. 노벨상은 위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매우 중요하지만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를 푼 사람에게 주어진다. 


한국 대학의 문제는 ‘위대한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해답을 찾는 과정이 엄청난 내적 투쟁을 불러일으키는데 한국 대학은 이 내적 투쟁을 극복할 자원·무기·지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질문은 야망이 있는 자만 던질 수 있다. ‘왜 인간은 고통받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야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불가능해 보였던 mRNA 백신을 발명하는 것도 야망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내적 투쟁의 결과물로 얻어진 해답은 ‘외적 투쟁’을 거친다. 부처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해탈을 얻고 자신의 해답을 설파했을 때 단번에 모든 사람들이 설득된 것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제시했을 때 알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위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예외 없이 외적 투쟁을 거쳤다. 소크라테스도 소피스트들과 싸웠고 제자백가도 서로서로 싸웠다. 


독일관념론조차 서로 싸웠다. 칸트의 사상을 퍼뜨린 피히테는 칸트의 사상을 자신의 언어로 창조적으로 해석했는데 칸트로부터 더 이상 나의 철학이 아니라는 말까지 들었다. 피히테는 세계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변증법적 관념론’을 발전시켰는데 향후 헤겔은 피히테의 사상을 발전시켜 변증법적 역사관을 완성했고 이는 다시 칼 맑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해 반박되었다. 독일관념론의 핵심 인물인 피히테는 1810년 세워진 베를린 대학의 초대 총장이었고, 헤겔은 19세기 이 대학의 가장 유명한 교수였다. 19세기 베를린 대학의 가장 유명한 동문은 피히테도 헤겔도 아닌 공부의 본질을 간파했던 칼 맑스다.


베를린 대학 본관에는 칼 맑스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최고의 공부는 위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내적 투쟁과 외적 투쟁을 동반하며 결국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런 공부의 본질을 깨닫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미국 대학에게는 100여 년이 걸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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